사진을 이용한 예술적 표현의 방법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미술의 장면에서 사진의 활용은 상상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윤지선의
rag face 연작은 모두 자신의 얼굴사진 위에 재봉기계를 이용해서
자수로 무늬를 입히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작업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는 행위이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거울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경험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거울, 즉 카메라가 없다면 확인할 수 없는 생김새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은 자신과 직면함으로써 타인과 구분되는 자아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윤의 경우와 같이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촬영한 경우라면 카메라는 자아를 단순하게 반영하는
거울의 기능을 넘어서 적극적인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무대의 역할을 더하게
된다.
타인에게는 보여주기 어려웠거나 이전에는 한 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는 내면의 자신을 카메라 앞에서 표정과 눈빛으로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
마치 작은 무대에 선 배우처럼 적극적으로 특정 정서나 사고를 자신의
얼굴이라는 마스크를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카메라는 엄격한 감독이 되기도 하고 환호하는 관객이 되기도 한다. 그런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윤에게 자신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작업의 흥미로운 특성은 그 다음 작업 단계에서 나타난다. 카메라 앞에서 확인하고 발견하고 개발한 자신의 얼굴을 다시 가리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은 얼굴 위에 재봉을 통해서 덮어가는 행위이다.
그것은 바늘로 찌르고 실로 꿰매는, 다소 과격한 실행을 요구한다. 자화상에 대한 심리적 기초에 자기애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행동은 매우 이율 배반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거울 앞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에 뒤이어지는 재봉을 단순히 얼굴을 덮어씌 우는 행위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녀의 재봉은 '가리기'
보다는 '만들기'에 가까운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으로서의 페르소나를 배제하고, 그녀 스스로 창조해낸 얼굴이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그녀 자신에게 얼마나 치열한 과정이었을지 완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완성된 작품들 앞에서 감지되는 충격 으로 짐작할 순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인식은 신체와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본래 '효경'
이라는 중국의 경전에 적힌 경구에서 나온 가르침인데, 현대에도 선조에 대한 효도를 중요한 덕목이며 규범으로 강조하는 나라인 한국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국에서 그녀의 작품이 그동안 크게 각광받기
어려웠던 이유 중에는 이러한 금기에 대한 도전이 장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녀의 얼굴 앞에서 금기를 뛰어넘은 자에 대한 경계심과
동경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처음 사진에 찍힌 그녀의 얼굴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출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타고난 얼굴은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유전자에 의해 저절로 실현된다. 이러한 제약은 자신을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에게 넘어서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윤은 금기를 깨는 행동을 통해서 주어진 조건과 한계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였다.
자신의 얼굴을 선택하고자 하는 의지는 독립된 자아를 형성해 나가기 위한 그녀만의 선택이었다. 이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얼굴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축하기 위한 얼굴을 찾아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윤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시선의 처음과 끝은 그녀의 눈에 머문다. 화려하고 촘촘하게 메워진 실들 사이로 이 작품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단서로 남겨진 눈은 마지막까지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둔다.
만일 그녀가 사진을 타피스트리(작품) 을 위한 단순한 밑그림으로 활용했다면 이 부분을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다. 남겨진 눈은 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분투의 증거이다. 눈은
다채로운 실들로 치장한 머리카락과 정교하게 조직된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지워진) 과거와 지금도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자신만의
얼굴을 애타게 찾고 있는 현재를 이어준다. 그리고 또한 그녀의 눈 속엔
똑같은 고민으로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